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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 떠나는 길목에서

kidam 2025. 2. 15.

고속버스 안, 고민의 연속

고흥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는 한적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겨울 풍경은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내 마음은 정반대였다. 버스 좌석에 몸을 깊숙이 묻고 창문에 기대어 앉았지만, 머릿속은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부모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끝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아버지, 어머니, 저 사실 학원을 그만뒀어요.”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부모님이 덜 놀라실까.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부모님께는 얼마나 충격적일까.


아버지에 대한 고민

특히 아버지가 걱정이었다. 평생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셨고, 우리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의 삶은 고단함 그 자체였다.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힘들게 살아오셨는데, 내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하면 화를 내실지도 몰라.”

나는 아버지의 깊게 팬 주름을 떠올렸다. 무거운 짐을 나르던 그의 손, 더운 여름날에도 땀에 젖어 일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내 자존감을 회복하고,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 달 동안의 고민

퇴직 후 한 달 동안 나는 끝없는 자기 대화를 반복했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지금 필요한 것’을 적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공허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내 진짜 바람이 드러났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늘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더 실질적이고,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일이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그 과정에서 보람을 찾고, 내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길이었다.


부모님께 드릴 말

나는 부모님께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기로 했다. 학원에서 겪은 감정과 고민, 그리고 내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이유를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버스가 고흥으로 달리는 동안 나는 머릿속에서 이런 말을 준비했다.

“아버지, 어머니. 사실 제가 학원을 그만뒀습니다. 학원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나름 보람도 있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지금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합니다. 타일, 방수 같은 기술을 배워서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부모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특히 아버지가 얼마나 걱정하실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다시 부모님을 찾아가기로 하다

퇴직 후 한 달간의 방황 끝에, 나는 다시 부모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버지가 내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고민이 컸다. 부모님은 3년 전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고흥으로 이사하셨다. 어릴 적부터 자주 갔던 곳이었지만, 이번 방문은 왠지 낯설고 불편했다.

‘9년 동안 쌓아온 걸 이대로 포기했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속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은 차분했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복잡했다.


고속버스 안, 부모님과의 대화를 앞두고

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실망하실까? 아니면 이해해 주실까?

그동안 부모님은 내게 늘 ‘안정적인 길을 걸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길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 학원을 그만뒀습니다.”

이 한마디가 부모님께 어떻게 들릴까.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 말이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걸, 내가 부모님께 잘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고속버스는 차분히 겨울의 고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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