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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1) 떠나는 길목에서

kidam 2025. 2. 10.

1) 사라진 자존감, 그리고 퇴직

2024년 12월 15일.
싸늘한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나는 9년간 몸담았던 학원의 문을 나섰다. 서울 강남에 있는 입시 전문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의 꿈을 함께 설계해보겠다고 다짐했던 지난 시간들. 그토록 열심히 달려왔는데, 지금은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사실 처음 학원에 들어왔을 때는 자부심도 있었고, 열정도 대단했다. 때로는 늦은 밤까지 남아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고, 입시 전략을 고민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원장과의 반복되는 충돌로 점차 식어버렸다.

원장과 나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학원 운영에 대해 물어오면 진심으로 조언해주었고,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귀 기울였다. 그리고 혼자 살아 반찬이나 먹거리 등등을 주시곤 했다. 챙김을 받는 기본은 알 것이다. 항상 원장님께 대한 고마움으로 나 또한 많이 베풀었다.  그 덕에 한동안은 나를 “학원의 중요한 파트너”처럼 대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사소한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작은 오류에는 비교적 관대하면서, 나에게만큼은 가차 없이 엄격했다.

“이건 선생님이 기본적으로 알아두셨어야죠. 왜 이런 걸 실수하신 거예요?”

그녀가 내뱉는 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들렸다. 처음에는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하고 받아들였지만, 잦은 비난과 감정적 질책은 곧 무력감을 심어주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사람 관계는 첫단추가 주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결정적 사건은 2024년 12월 초 시험 기간에 벌어졌다. 마지막 수업의 학생이 딱 한 명뿐이라 아파서 결석 한다기에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도 되겠다 싶어 원장에게 전화했지만 부재중이었다. 그랬더니 “문자로 상황을 보고하라”는 답이 왔다. 그래서 “오늘 8시에 퇴근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뜻밖이었다.

“그만둘 생각 있으면 말씀하세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이제 정말 끝인가? 여기서 더 버틸 이유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9년 동안 쌓아 올린 노력과 애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눈앞이 아득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제 벗어나고 싶다’는 갈증이 피어올랐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퇴직을 권고하는 말투로 하루하루가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지내던 차에 원장은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합의라는 명목하게 퇴직을 권고 받았다. 말이 좋아 합의지 거의 짤린거나 마찬가지다. 이후 하루하루가 괴로웠고 결심을 내릴 때가 다가 온다. 일주일 간의 고민 끝에  결국 퇴직을 결심했다.

퇴직 후의 자괴감

학원을 완전히 그만두고 나니 허탈감이 몰려왔다. 성남의 자취방에 틀어박혀 “내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대체 뭘 할 수 있는 사람일까?”를 끝없이 되뇌었다. 9년 동안 나름 최선을 다해왔는데, 문득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업종은 전혀 경험도 없고 무지했다.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지만, 나는 그저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자신감은 지나간 추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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