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새로운 시작
그렇게 힘겹게 집에 돌아오니, 시계는 이미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데,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중 한 학생이 장문의 문자를 남겨 두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낮에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도대체 내가 뭘 했길래, 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날 아끼고 응원해 줄까?’ 되돌아보면, 그저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함께 늦은 밤까지 문제 풀어 주고, 때론 같이 음식 먹으며 수다 떨고, 시험 성적이 안 나오면 위로해 주고, 좋은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기뻐해 주는… 그런 평범한 선생님이었는데.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은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해 두었다가, 마지막 날 이렇게 터뜨려 준 것이다.
나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분홍색 편지 봉투를 쳐다봤다. 하나씩 이름이나 글귀가 적혀 있고, 봉투 안에는 각자 쓴 손편지가 들어 있을 텐데, 선뜻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미 메시지만 봐도 눈물이 가시질 않는데, 그 편지를 읽으면 도대체 얼마나 울어 댈까 생각하니 그냥 또 울컥.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지금은 좀 더 맘을 추스리고 나서….’ 하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별이라니, 나한테는 너무 과분하다….’ 싶은 생각도 들고, ‘아이들이 남겨 준 말대로, 절대 미안해하지 말라는 걸 실천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오갔다. 그 와중에 가슴이 너무나 따뜻해지고, 또 너무나 서글펐다.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까?’ 싶었지만, 이미 결심한 길이기에 다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용기를 내어 한두 통의 편지를 열어 보았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 제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어른이었어요. 꼭 다시 만나요”라며 간단히 적었고, 또 다른 아이는 자기 인생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며,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소중했다고 털어놨다. 읽다 보니 눈물이 멈추질 않아 이튿날까지 모두 읽기 힘들었지만, 그만큼 가슴속에 큰 위로가 됐다. ‘아, 이 아이들도 내게 그렇게 크게 의지하고 있었구나.’
지금도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거나, 학원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그날 찍었다는 사진이나 영상을 떠올린다. 특히 케이크 사진을 보면 괜히 웃음 짓게 된다. 노란색 공주 드레스를 닮은 그 케이크… “퇴직 축하합니다”라는 노래… 차라리 누가 봐도 우스꽝스럽지만, 그 진심만큼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으니. 그거야말로 내 9년 학원 생활의 정점이자,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학원 원장과의 갈등이나 업무 과중, 그리고 반대로 ‘아이들과 함께할 때의 즐거움’들이 모두 모여 나를 9년이라는 세월 동안 버티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들이 케이크와 편지로 보상하듯이 내게 보내준 사랑은, 그 모든 갈등과 고단함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사람이 힘들 때, 결국 이렇게 작게나마 느끼는 보람으로 살아가는 거구나….’
나는 이 일을 겪으며, “퇴직”이라는 단어가 무조건 슬픈 이별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어쩌면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기회이자, ‘내가 그간 누려 온 것들을 다시금 깨닫게 만드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도 “선생님, 절대로 미안해하지 마세요. 좋은 소식 들고 다시 만나요!”라고 했으니까, 나도 그 말을 지키고 싶다. ‘그래, 언젠가 더 멋진 모습으로 아이들을 보러 가야겠다. 그때 이 케이크 사진과 분홍 편지를 다시 꺼내 보면서 함께 웃을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런 작은 희망을 품게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별이 있다지만, 이렇게 노란 공주 케이크로 “퇴직 축하합니다”를 불러 주는 이별이 또 있을까?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둔 것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훗날 내가 다른 일을 하다가 힘들 때, 혹은 밤에 문득 과거가 그리워질 때, 이 사진과 봉투들을 꺼내 보면 분명히 웃을 수 있으리라. ‘저 아이들의 사랑과 응원을 헛되이 하지 말자. 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이 마음만은 잊지 말자.’
그날 이후로도, 몇몇 아이들은 SNS나 문자로 근황을 전해 주곤 했다. “선생님, 저 오늘 시험 잘 봤어요!”, “선생님, 수능 보기 전에 꼭 다시 보고 싶어요!” 등등. 나는 “그래, 항상 응원해!”라고 답장을 보냈다. 예전처럼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사이의 연결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별”이란 계기를 통해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확인하게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마 내가 예고했던 대로 새로운 길을 걷게 되겠지. 그 길이 어떻든 간에, 아이들이 만든 노란 케이크 사진과 분홍 편지는 늘 내 가슴 한구석에서 나를 응원해 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내가 준 시간이 큰 힘이 되었길 바란다. 서로에게 뭘 주고받았는지, 한꺼번에 열어볼 수는 없어도, 인생의 어느 순간에 문득 “아, 그때 참 좋았지” 하고 웃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수필을 쓰는 지금, 나는 분홍 봉투들 중 아직 열지 않은 몇몇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아마 언젠가, 조금 더 담담해졌을 때 하나씩 열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마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애틋함과 고마움이 다시금 벅차오르리라. 그것이야말로, 9년의 세월 끝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자, 아이들이 내게 보내 준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아이들은 내게 “선생님, 우리 꼭 다시 만나요!”라고 했다. 나도 아이들에게, ‘그래, 꼭 다시 보자. 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네가 성장한 것처럼 나도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 줄게’라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위해서라도, 이번 결심을 후회 없이 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떠난다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더 반짝이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니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그 케이크 사진을 꺼내 본다. 화려한 노란 드레스 케이크가 마치 “축하”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 보이고, 곁에 놓인 분홍 봉투들은 하나하나가 작은 마음의 선물 같다. 사진 속 배경은 조금 흐릿하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박웃음이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나의 서툰 미소도 함께 남아 있다. 그 모든 게 이별의 순간을 가장 따뜻하게 채색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이런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 준 아이들에게, 그리고 9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걸어왔던 과거의 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동시에, 이 수필을 읽는 누군가가 ‘누구에게나 이런 아름다운 작별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느껴 준다면, 그 또한 큰 보람이다. 이별은 늘 슬프지만, 때로는 그 슬픔 뒤에 더 따뜻한 이야기가 피어나는 법이다. 나는 그 사실을 노란 케이크와 분홍 편지들 사이에서 배웠다.
아마 훗날 내 인생을 회고할 때, “2024년 12월 15일”이라는 날짜를 절대 잊지 못하리라. 아이들이 내놓은 케이크의 초를 껐던 그 짧은 순간, “퇴직 축하합니다”라는 어설픈 노래가 울려 퍼지던 그 교실 한편에서, 나는 이별을 넘어 새로운 출발을 마음에 품었다. 아이들이 “쌤, 우리 진짜진짜 사랑하고, 고마웠어요!”라고 말하던 목소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귀에서 맴돌 것 같다. 그런 추억이 있다면, 새로운 길도 충분히 두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분홍 편지 봉투 중 하나를 슬쩍 꺼내 본다. 아직 다 열어 보지 못한 게 몇 장 남아 있으니까. ‘그래, 오늘 밤엔 한두 장 정도 더 펼쳐 볼까…?’ 생각을 하며 스스로 웃는다. 그리고 또 울겠지. 하지만 그 울음이 슬픔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걸, 이젠 잘 알고 있다. 아이들과 내가 함께 만든 이 마지막 추억이, 앞으로도 내 삶을 계속 밝히는 등불이 되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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