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잊지 못할 그날
나는 2024년 12월 15일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울림이 느껴진다. 그날은 나에게 9년간 이어온 학원 생활이 마무리되는 날이었고, 동시에 학생들이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마지막 시험 전 직전보충 수업에 열중하던 시기였다.
직보 기간은 시험을 코앞에 둔 학생들에게 막판까지 지켜보며 문제 풀이와 개념 정리를 돕는 ‘초집중 기간’이다. 강사로서도 중요한 일정이지만, 내게는 마지막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했다.
하루 전인 14일부터 교실은 이미 시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이 부분 다시 설명해 주세요!”라며 다급하게 질문했고, 나는 “그래, 자 여기 보자…” 하며 차근차근 오답을 짚어주었다.
‘이 아이들과 나 사이의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애써 태연한 척해도 금세 목이 메어 올랐다.
그날의 마지막이 15일이라는 사실이 다가올수록, 나는 학생들에게 직접 이별을 고해야 하는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더 미루면 미룰수록 내 결심도 흔들릴 것 같았다.
나는 이미 퇴직을 결정했으니, ‘차라리 마음 단단히 먹고 이번 주를 끝으로 학원을 떠나자’고 생각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하나"였다.
처음에는 “쉼이 필요하다”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9년 동안 매일 칠판 앞에 서서 똑같은 패턴으로 수업하고, 원장과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참고 또 참아 왔는데,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시험 직전에 이런 말을 들은 학생들은 당연히 “왜요?”라고 물으며 놀라워했다. “갑자기 왜요…”라고 묻는 아이들도 있었고, “선생님, 혹시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거 아니죠?”라며 걱정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휴, 미안하다 … ’ 하고 마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그냥… 좀 쉬려고 해.” 정도만 내뱉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네…” 하고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15일, 마지막 수업이 이어졌다. 시험 준비에 한창인 아이라면, 도무지 내 퇴직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틈도 없었을 테다. 나 역시 애써 “오늘은 열심히 공부하자” 하며 일상적인 수업 분위기를 유지하려 했지만, 내심 ‘이제 진짜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온종일 어지러웠다.
오후 1시쯤, 한 학생의 문자가 왔다. . “쌤, 오늘 1시쯤 시간 되실까요? 할머니가 뭘 주신다는데 좀 이따 교실로 가져다 드릴 것 같아요.”
나는 “그래? 알았어~”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문득 시계를 보니 1시 50분이 훌쩍 넘었다. 휴대폰을 열어 봤더니, 그 학생이 남긴 문자가 있었다. “지금 앞 강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급히 복도로 나갔더니,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뭐지?’ 궁금해하며 옆 강의실 문을 열었는데, 노란색 공주 드레스 모양의 케이크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주위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동시에 “퇴직 축하합니다~”라고 개사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순간, 가슴이 뻐근해졌다.
‘퇴직 축하라니… 이런 엉뚱한 발상은 또 어떻게 한 걸까?’ 하지만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아이들이 건넨 분홍 봉투 속에는 진심 어린 손편지들이 담겨 있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선생님이셨어요."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하나씩 편지를 열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지만, 때로는 그 슬픔 뒤에 더 따뜻한 이야기가 피어나기도 한다.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언젠가 더 멋진 모습으로, 성장한 나로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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